박정희 사망과 민주화 기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 사망하였다. 18년간의 권위주의 통치가 끝나면서 많은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실현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이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 부른다.
12·12 사태와 신군부 집권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중심의 군 내부 세력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른바 ‘12·12 사태’이다. 이후 전두환은 1980년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까지 겸직하며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학원민주화 운동
1980년 3월 새 학기부터 대학 학생회와 평교수회가 부활하였고, 해직교수와 제적학생들이 복귀하였다.
- 5월 14일: 광화문·종로에서 27개 대학 학생대표를 포함한 5만여 명이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였다.
-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서 학생과 시민 20만여 명이 집결하여 시위를 벌였다.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학생·시민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 정치활동 중지
- 집회·시위 금지
- 언론 검열 강화
- 대학 휴교령 발동
5월 18일에는 김대중·김종필 등 정치인 26명이 연행되었다.
광주에서만 계속된 시위
비상계엄 확대 이후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위가 멈추었다. 그러나 광주에서만 시위가 계속되었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과 계엄군 공수부대원 사이에 첫 충돌이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