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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 계엄군 진압: '화려한 휴가' 작전

신군부의 진압 작전 명령과 계엄군 행동의 기록

#한국사#민주화#계엄군#1980

마지막 수정: 202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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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명령 ‘화려한 휴가’

신군부는 광주 지역 전면 점령을 위한 작전에 ‘화려한 휴가’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1980년 5월 18일,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되었다.

공수부대 투입과 폭력 진압

투입된 공수부대는 시위 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하였다. 곤봉, 총검 등을 사용한 진압은 시민들의 극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이것이 오히려 더 많은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였다.

발포 경과

5월 20일 밤: 계엄군이 시민을 향해 처음으로 총을 발포하였다.

5월 21일 오전 1시경: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이루어졌다. 국가기록원 희생자 기록에 따르면, 최종 집계된 시민 사망자 162명 중 **총상에 의한 사망이 124명(77%)**으로 가장 많았다.

외곽 봉쇄와 고립

5월 21일 저녁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하자,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퇴각하여 도시 진입로를 차단하였다. 이로써 광주는 외부와 단절되었다.

  • 언론은 계엄사의 검열하에 사실을 보도하지 못하였다.
  • 광주로 들어오는 전화·교통이 통제되었다.

무력 진압 결정

5월 23일, 계엄군 지휘부는 시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기로 결정하였다. 5월 25일경 봉쇄 작전이 완료되었다.

5월 27일 도청 재진입

5월 26일 오후 6시 최후통첩 이후,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재진입하였다.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은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제압되었다. 항쟁은 약 열흘 만에 종결되었다.

지시·담화문 기록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광주시 행정기록에는 이 시기 계엄사·내무부·도청에서 광주시로 하달된 지시·담화문이 남아 있다.

  • 5월 17~24일: 계엄포고문 제10호 공포, 경고문·호소문 배포, 귀가 촉구
  • 5월 25~27일: 무기 반납 담화문 발표, 일본인 소개(疏開) 명령, 무기 회수 지시
  • 5월 28일 이후: 연행자 훈방 조치, 피해복구 작업 지시

국가기록원 지시·담화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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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자료